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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UNG SOL: 파랗고 일렁이는 Blue and Waving
디아컨템포러리는 독일 라이프치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남궁솔의 국내 첫 개인전 《파랗고 일렁이는 Blue and Waving》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랜 시간 탐구해 온 ‘잔상(afterimage)’과 감각의 시간성을 중심으로, 이미지가 생성되고 사라지는 과정을 회화적으로 펼쳐 보인다.
작가의 감각적 태도에는 독일 표현주의와 미국 추상회화, 그리고 한국 근현대 회화에 대한 경험이 함께 스며 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 교환학생 시절 우연히 접한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의 작품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후 독일 유학을 결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독일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그는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클리포드 스틸(Clifford Still) 등 미국 추상회화 작가들의 색과 공간 구성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유영국과 윤형근 등의 한국 근현대 회화를 다시 발견하며, 절제된 화면 안에서 깊은 공간감과 감정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회화적 태도에 공감하게 되었다.
남궁솔의 회화는 특정한 풍경이나 장면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오히려 어떤 장면이 시야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감각 안에 남아 있는 빛의 압력, 색의 온도, 공간의 흔들림을 붙잡는다. 화면은 익숙한 풍경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실제 장소의 재현이라기보다 기억과 감각 안에 남겨진 인상의 층위에 가깝다. 그의 회화는 외부 세계를 묘사하기보다, 세계가 마음속에 남겨 놓은 흔적이 어떻게 다시 떠오르고 스며드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감각은 작가의 성장 환경과도 깊게 연결되어 있다. 춘천에서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강원도의 산세와 자연 속 시간을 가까이 경험하며 자랐다. 산은 그에게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인간을 압도하면서도 동시에 감싸 안는 존재였다. 거대함과 두려움, 보호받는 감각이 공존하는 장소. 그의 회화 속 깊고 침잠한 공간감과 푸른색의 울림은 이러한 감각적 기억과 맞닿아 있다.
남궁솔은 한자리에 오래 앉아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일을 좋아한다. 빽빽하게 흔들리는 나뭇잎, 굽이치는 산등성이, 달밤, 구름이 지나가는 하늘, 파랗게 일렁이는 바다처럼 움직이지만 동시에 멈춰 있는 풍경들. 그의 시선은 풍경 위를 천천히 떠돌다가 어느 순간 초점을 잃고 색 안으로 스며드는 감각에 도달한다. 시간과 공간의 감각이 희미해지는 그 상태, 설명하기 어려운 울렁거림은 그의 회화가 출발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작가의 작업 방식 또한 이러한 감각과 긴밀히 연결된다. 그는 캔버스를 직접 짜는 일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나무와 천이라는 단단하면서도 연약한 재료로 그림의 집을 만들고, 얇은 밑칠을 한 뒤 화면 앞에 오래 머문다. 사전 드로잉이나 밑작업 없이 하나의 색에서 시작된 화면은 가까이 다가가 그리고, 다시 멀어져 바라보는 반복 속에서 천천히 형태를 얻는다. 잘 칠해진 붓질과 삐끗한 흔적들, 여러 날에 걸쳐 쌓이는 얇은 색의 층들은 화면 안에서 공기와 깊이, 리듬을 만들어낸다.
남궁솔에게 색은 대상을 재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감각이 머무는 시간을 붙잡는 회화적 언어이다. 그의 화면에서 색은 하나의 형상을 설명하기보다, 어떤 순간의 공기와 온도,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는 인상의 밀도를 드러낸다. 얇게 올린 첫 색 위에 다시 색을 겹치고, 그 사이에 시간을 두는 과정 속에서 화면은 서서히 깊이를 얻는다. 그렇게 생겨나는 형상들은 특정한 장소의 모습이라기보다, 지나간 감정과 기억이 색의 층위 속에서 다시 떠오르는 실루엣에 가깝다.
남궁솔의 화면에서 ‘흐림’은 단순한 모호함이 아니다. 흐릿하기 때문에 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흐릿함을 통해 감각은 더 오래 지속된다. 명확한 윤곽은 이미지를 빠르게 이해하게 만들지만, 그의 회화는 이해를 지연시키고 보는 시간을 길게 머물게 한다. 작품 속 푸른 색조와 옅은 빛, 어두운 층위들은 공기와 온도, 시간의 흐름처럼 작동하며 화면 전체에 느린 진동감을 만들어낸다. 그의 회화는 정지된 이미지라기보다, 천천히 퍼지고 되돌아오는 감각의 파동에 가깝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한국 방문 중 다시 마주한 풍경에서 출발한 작업들도 포함된다. 남궁솔은 속초 동명항에서 오랜 시간 동해를 바라보았다. 익숙하지만 늘 새롭게 다가오는 바다 앞에서 그는 끝없이 들락날락하는 파도와 광활한 파랑의 움직임을 오래 응시했다. 반복적으로 밀려오고 사라지는 물결,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와 다시 물러가는 리듬 속에서 현실의 문제들은 잠시 멀어지고, 거대한 시간의 흐름만이 몸 안에 남았다. 작가는 이러한 순간에 대해 “큰 바다를 눈에 심어 놓으면 자잘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작가는 자신의 회화를 “확실하게 불확실한 감각을 잡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림은 그에게 즉각적인 대답을 주는 매체가 아니다.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알고 시작하더라도, 그리는 시간 속에서 그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흐려진다. 그리고 모든 과정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이런 그림이 내게 왔구나” 하고 화면을 마주하게 된다. 회화는 그에게 시간을 들여 감각을 기다리는 일이자, 불확신 속에서 천천히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번 전시 제목 《파랗고 일렁이는 Blue and Waving》은 이러한 남궁솔 회화의 상태를 함축한다. ‘Blue’가 감각의 깊이와 정서를 암시한다면, ‘Waving’은 고정되지 않은 이미지와 끊임없이 흔들리는 시간의 흐름을 드러낸다. 그의 화면 속 색은 공기처럼 퍼지고, 기억처럼 되돌아오며, 시간처럼 일렁인다. 작품은 명확한 결론이나 완결된 이미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사라진 장면의 잔상과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감각 사이에서, 회화가 천천히 생성되는 순간을 붙잡아낸다.
오늘날 우리는 끝없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미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각 환경 속에서 남궁솔의 회화는 오히려 ‘천천히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질문한다. 그의 작업은 즉각적으로 이해되기보다, 오래 머무를수록 더욱 깊게 스며든다. 이번 전시는 회화를 통해 감각과 기억, 시간의 움직임을 다시 경험하게 하는 자리이자, 이미지 너머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층위들을 조용히 응시하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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